광화문 앞길은 경복궁으로 출입하는 통로이자 국가의 가장 큰 길이었다. 임진왜란 시기 광화문이 불타 없어진 후에도 광화문 앞길은 육조거리로, 궐외각사(闕外各司)들이 모여 있는 중심 관청가였다. 고종은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광화문을 복원했으며, 그 앞길은 국가중심지로 재조성 하였다.
그러나 1910년 한일 강제 병합 이후 광화문 앞길의 풍경은 확연히 달라졌다. 경복궁 내에 조선총독부가 세워지면서 광화문이 경복궁 동쪽으로 강제 이전되었다.
광복. 기쁨의 함성도 잠시 광화문 일대는 미군정, 정부 수립, 전쟁과 복구, 독재와 시민 혁명 등 격동의 파도가 그치질 않았다. 6.25 전쟁 시기에는 광화문이 완전 불타버리기도 하였다.
꽃이 피고 지듯 광화문은 사라졌다 나타나길 반복하였지만, 광화문 앞길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만민공동회, 3.1운동, 시민 혁명에서 촛불문화제까지 광장의 역사는 이어졌고, 그렇게 우리의 광장은 민주주의의 상징이자 화합의 공간으로 발돋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