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장소개
  • 역사적 의미

대한민국 역사의 중심, 광화문광장

광화문 앞길은 경복궁으로 출입하는 통로이자 국가의 가장 큰 길이었다. 임진왜란 시기 광화문이 불타 없어진 후에도 광화문 앞길은 육조거리로, 궐외각사(闕外各司)들이 모여 있는 중심 관청가였다. 고종은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광화문을 복원했으며, 그 앞길은 국가중심지로 재조성 하였다.

그러나 1910년 한일 강제 병합 이후 광화문 앞길의 풍경은 확연히 달라졌다. 경복궁 내에 조선총독부가 세워지면서 광화문이 경복궁 동쪽으로 강제 이전되었다.

광복. 기쁨의 함성도 잠시 광화문 일대는 미군정, 정부 수립, 전쟁과 복구, 독재와 시민 혁명 등 격동의 파도가 그치질 않았다. 6.25 전쟁 시기에는 광화문이 완전 불타버리기도 하였다.

꽃이 피고 지듯 광화문은 사라졌다 나타나길 반복하였지만, 광화문 앞길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만민공동회, 3.1운동, 시민 혁명에서 촛불문화제까지 광장의 역사는 이어졌고, 그렇게 우리의 광장은 민주주의의 상징이자 화합의 공간으로 발돋움했다.

1392
~ 1910

1392 ~ 1910 조선의 심장, 육조거리
광화문 앞길은 궁궐 내 어가(御街)와 연결되어 조선왕조의 국정기관이 도열해 있는 중심대로였다. 경복궁 정문 광화문에서 황토마루(지금의 세종대로 사거리)까지 거리 양편에는 의정부를 비롯하여 이조·호조·예조·병조·형조·공조 등 국가의 주요 기관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 1392 조선건국
  • 1394 한양천도
  • 1395 광화문 육조거리 조성
    경복궁 창건
  • 1592 임진왜란
  • 1865 경복궁 중건
  • 1896 아관파천
  • 1902 고종 즉위 40년 칭경기념비전 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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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전도 (18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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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경기념비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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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앞 해태상(1910)

1910
~ 1945

1910 ~ 1945 일제의 야욕에 빛을 잃은 광화문
1910년 강제병합 이후 일제는 조선을 식민통치의 전략지로 삼기위해 경성지구 개정사업을 시행하였다. 경복궁 내 총독부를 신축하고, 경복궁을 식민통치를 정당화하고 일선동조(日鮮同祖)를 촉진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개최했던 각종 박람회의 장소로 사용하였다. 500년 왕도정치를 상징했던 ‘육조거리’는 이제 조선을 식민통치하기 위한 ‘광화문통(光化門通)’으로 바뀌었다.
  • 1910 한일 강제 병합
  • 1912 경성지구 개정사업 시행
  • 1914 광화문 도로원표 설치
    육조거리→광화문통으로 개칭
  • 1918 광화문선 전차 운행 개시
  • 1923 서십자각·궁장 철거
    해태상 이전
  • 1926 경복궁 내 조선총독부 청사 준공
  • 1927 광화문 경복궁 동쪽 건춘문 북쪽 이전
  • 1929 시정 20주년 조선박람회 개최
    동십자각·궁장 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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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물산공진회의 광고지(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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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통 전차(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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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 신청사 (1926)

1945
~ 1960

1945 ~ 1960 전쟁과 격변, 광화문을 휩쓸다
해방 이후부터 제1공화국 시대인 1960년까지의 15년은 우리 역사상 격변의 시기였다. 해방의 기쁨도 잠시 극도로 혼란했던 정치, 경제, 사회적 상황 속에 비극적인 6.25 동란을 맞았다. 중앙청에는 태극기와 인공기가 번갈아 오르고, 일진일퇴 공방 속에 중앙청의 일부와 광화문 문루 부분이 훼손되었다.
  • 1945 해방, 경성에서 서울로 명칭 변경
  • 1946 광화문통→세종로로 개칭
    신탁통치 반대운동
  • 1948 대한민국 정부 수립 선포
  • 1949 서울자유시→서울특별시로 전환
  • 1950 6.25전쟁 발발
    광화문 문루 소실
  • 1953 서울 환도 공식선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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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탁통치 반대운동(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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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부수립일 기념식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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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속 땔감을 찾는 모습 (1950)

1960
~ 1980

1960 ~ 1980 콘크리트로 복원된 광화문, 선전의 장(場)이 되다
4.19 혁명으로 막을 내릴 듯 했던 독재와 권위주의는 5.16 군사정변을 거치면서 20여 년 동안 지속됐다. 군사정부는 빈곤퇴치와 경제발전, 성공적 올림픽 개최라는 깃발을 세운 후 더욱 강력하게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했고, 1968년 콘크리트로 복원된 광화문을 배경으로 국가 행사가 주최되었다.
  • 1960 3.15 부정선거
    4.19 혁명
  • 1966 세종로 지하도 개통
    세종로 확장공사 시행
  • 1968 콘크리트로 광화문 복원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설치
  • 1970 세종로 폭 100m로 확장
    정부종합청사(지금의 정부서울청사) 준공
  • 1975 광화문구역 재개발지구 지정
  • 1978 세종문화회관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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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로 확장공사(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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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로 전경(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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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문화회관 개관(1978)

1980
~ 2000

1980 ~ 2000 역사의 복원, 시민의 공간으로 탈바꿈한 광화문
1988년 올림픽을 개최하고, 1992년 문민정부가 출범하면서 광화문에도 크고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1995년 조선총독부 건물이 ‘역사 바로 세우기 사업’에 따라 70여년 만에 철거되었다. 이러한 변화와 더불어 지구의 날 행사 등을 맞아 세종로가 시민들에게 개방됐으며, 세종로 네거리를 바로 건널 수 있는 횡단보도가 설치되었다.
  • 1983 중앙청 조직, 정부종합청사로 이전
  • 1986 국립중앙박물관, 구 중앙청 이전 개관
  • 1987 6.10 민주항쟁
  • 1990 경복궁 복원사업 시작
  • 1995 구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
  • 1996 광화문 지하철역 개통
  • 1999 광화문 시민열린마당 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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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O.C위원장 방한 기념 광화문아치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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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 민주항쟁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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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조선총독부 철거(1995)

2000
~ 현재

2000 ~ 현재 시민의 목소리, 광화문에 울리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광화문에서 열린 ‘새천년 맞이 국민 대축제’ 행사와 2002년 월드컵 응원을 계기로 시민들은 역사 속에 길이 남을 축제의 장관을 연출하였다. 2009년 개장한 광화문광장은 민주집회를 통해 민의가 표출되는 ‘시민의 광장’이 되었다. 하지만 ‘도로에 갇혀버린 섬’라는 오명을 얻고 있는 광화문광장을 새롭게 조성하는 것은 해결 과제로 남았다.
  • 2000 새천년맞이 국민대축제 개최
  • 2002 2002 한일 월드컵, 광화문 시민 응원
    미선, 효순 추모 촛불집회
  • 2008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 집회
  • 2009 광화문광장 개장
    세종대왕 동상 설치
  • 2010 광화문 복원
    세종대로명 확장 고시
  • 2011 대학생 반값 등록금 촛불집회
  • 2012 세종대로 보행자 전용거리 최초 운영
  • 2016 촛불문화제
    의정부 터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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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월드컵 성공 기원 축제(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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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광장 개장(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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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문화제(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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