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전비

옥포 해전

1592년 5월 7일(음력)에 이순신이 주도적으로 지휘한 조선 함대가 옥포(玉浦, 경상남도 거제시)에서 일본의 군선 26척을 격파하였다. 임진왜란 때 조선 수군은 이 해전에서 최초로 일본에 승리하였다.

사천 해전

1592년 5월 29일~6월 1일(음력)에 이순신이 주도적으로 지휘한 조선 함대가 사천(泗川, 경상남도 사천시)에서 일본의 군선 13척을 격파하였다. 이 해전에서 거북선이 최초로 실전에 투입되었다.

당포 해전

1592년 6월 2일(음력)에 이순신이 주도적으로 지휘한 조선 함대가 당포(唐浦, 경상남도 통영시)에서 일본의 군선 21척을 격파하였다. 거북선을 이용한 전술로 일본의 대장선을 격파하였다.

제1차 당항포 해전

1592년 6월 5일(음력)에 조선의 연합 함대가 당항포(唐項浦, 경상남도 고성시)에서 일본의 군선 28척을 격파하였다. 전라우수영의 수군이 이 해전에 참전함으로써 연합 함대의 전력이 크게 강화되었다.

한산도 해전

1592년 7월 8일(음력)에 조선의 연합 함대가 한산도(閑山島, 경상남도 통영시)에서 유인 작전을 펼쳐 일본의 군선 59척을 격파하였다. 이 해전은 행주 대첩, 진주성 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이다.

안골포 해전

1592년 7월 10일(음력)에 조선의 연합 함대가 안골포(安骨浦, 경상남도 창원시)에서 일본의 대선 20여 척을 격파하였다. 포구가 좁은 안골포의 지형을 이용하여 판옥선들이 번갈아 가며 공격하는 방식으로 승리를 거두었다.

부산포 해전

1592년 9월 1일(음력)에 조선의 연합 함대가 부산포(釜山浦, 부산광역시)에서 일본의 군선 100여 척을 격파하였다. 임진왜란 때 일본군의 본거지였던 부산포를 직접 공격하여 대승을 거둔 해전이었다.

웅포 해전

1593년 2월 10일~3월 6일(음력)에 조선의 연합 함대가 웅포(熊浦, 경상남도 창원시)에서 7차례 전투를 수행하였다. 일본 수군이 전투를 회피함에 따라 이들을 섬멸하기 위해서는 육군과 협공해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제2차 당항포 해전

1594년 3월 4~5일(음력)에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의 연합 함대가 당항포(唐項浦, 경상남도 고성시)에서 31척의 일본 군선을 격파하였다. 이순신의 용의주도한 전략으로 승리를 거둔 해전이었다.

명량 해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이순신이 1597년 9월 16일(음력)에 명량(鳴梁, 전라남도 해남군과 진도 사이의 해협)에서 13척의 판옥선으로 일본의 군선 133척에 맞서서 31척을 격파하였다.

절이도 해전

1598년 7월 19일(음력)에 이순신의 조선 함대가 절이도(折爾島, 전라남도 고흥군) 근처에서 일본의 군선 6척을 격파하였다. 이 해전의 승리로 조선 수군이 재건에 성공하였다는 것을 만천하에 보여주었다.

노량 해전

1598년 11월 19일(음력)에 이순신과 명나라 진린의 연합 함대가 노량(露梁, 경상남도 하동군과 남해도 사이의 해협)에서 일본의 군선 200척을 격파하였다. 임진왜란 최후의 해전으로 이 전투에서 이순신이 전사하였다.

함부로 가벼이 움직이지 말고 태산같이 조용하고 신중하라

1592년 5월 7일 옥포해전에 첫 출전하는 군사들이 긴장을 풀고 여유와 냉철함을 가지도록 함.(임진장초)

바다에 맹세하니 어룡이 감동하고 태산에 맹세하니 산천초목이 아는구나!

1592년 임금의 피난 사실을 듣고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칠 것을 다짐함.(이충무공전서)

지금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습니다. 죽을 힘을 다해 막아 싸우면 반드시 할 수 있습니다.

1597년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용된 후 수군을 폐하라는 임금의 지시에 수군의 필요성을 호소함.(이충무공전서)

죽고자 하면 반드시 살 것이요, 살고자 하면 반드시 죽을 것이다.

1597년 명량해전을 앞두고 병법을 인용하여 장수들에게 필승을 강조함.(난중일기)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 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

1597년 명량해전을 앞두고 장수들의 사기를 높임.(난중일기)

전투가 한창 급하니 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말라. 군사들을 놀라게 해서는 안 된다.

1598년 11월 노량해전에서 적의 총탄을 맞아 죽음을 앞두고 병사들의 사기를 염려함. (이충무공전서)

대장부가 세상에 태어나 쓰이면 나라에 목숨을 바칠 것이요, 쓰이지 못하면 들에서 농사짓는 것으로 만족할 것이다.

평소 장군의 마음가짐과 우국충정을 보여줌.(이충무공전서)

남아 있는 왜적들의 배는 단 한 척이라도 못 돌아가게 하여 나라의 원수를 갚을 것이다.

이순신 장군이 명나라 선유도사에게 왜적을 반드시 물리치겠다는 각오를 밝힘.(이충무공전서)

죽으면 죽는 것이지, 어찌 구차하게 죽음을 면하려 할까보냐!

“뇌물을 바치고 죽음을 모면하라”는 부하의 말을 듣고 그를 꾸짖음.(이충무공전서)

나라와 사직을 지키는 일에 죽으나 사나 온 힘을 다 바치리라.

임금이 왜적의 침략으로 피난가는 위태로운 현실을 한탄함.(난중일기)

지금 기회를 놓치면 후회해도 소용없을 것이다.

1593년 명나라와 일본의 회담이 불리한 전세를 만회하려는 일본의 전술임을 알고 적을 공격할 기회라고 주장함.(난중일기)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 번 싸워 백 번 이길 수 있다.

적과의 전투에 임하는 기본자세를 보여줌.(난중일기)

어머님의 부고를 알려왔다. 달려나가 가슴을 치고 슬퍼하니 하늘의 해조차 캄캄해 보였다.

1597년 1월 13일 백의종군할 때 어머님의 부고를 듣고 비통한 심경을 드러냄. (난중일기)

이 원수들을 무찔러 없앨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습니다.

1598년 11월 노량해전에 출전하기 전 배에서 하늘에 기원을 올림.(이충무공전서)

작은 이익을 얻고자 공격한다면 큰 이익을 얻지 못할 것이다.

1594년 2월 13일 적의 배가 소규모로 출현했다는 첩보를 듣고 명령함.(난중일기)

수군과 육군이 함께 진격한다면 적들을 모두 섬멸할 수 있을 것이다

1592년 부산포해전에 임하는 전략을 논의함.(이충무공전서)

관직을 뽑는 지위에 있는 동안에는 같은 문중이라 만날 수 없다.

친척인 율곡 이이가 인사권자로 있을 때 그를 만나 보라는 말을 거부함.(이충무공전서)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데는 죽음만 있을 뿐 두 마음은 없다

나라가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신하로서의 마음 자세를 밝힘.(이충무공전서)

나랏일을 생각하니 눈물이 흘렀고, 80세의 병든 어머니를 생각하니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1595년 1월 1일 새해에 나라와 부모를 생각함.(난중일기)

나라의 정세가 아침이슬처럼 위태롭구나.

1595년 7월 1일 홀로 나라의 앞날을 걱정함.(난중일기)

적의 배가 천 척이라도 우리 배에 똑바로 덤비지 못할 것이니 조금도 동요하지 말고 온 힘을 다해 활을 쏘아라

1597년 명량해전에서 군사들을 독려함.(난중일기)

석자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강산이 떨고, 한 번 휘두르니 피가 강산을 물들이도다

이순신 장군의 검에 새겨진 문구임.(이충무공전서)

슬프다. 내 아들아!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갔느냐?

1597년 10월 14일 이순신장군이 아들의 부고를 들음.(난중일기)

Monument to Twelve Victories

Battle of Okpo

On May 7, 1592 (lunar calendar date), the Joseon fleet led by Admiral Yi Sun-sin destroyed a total of 26 Japanese vessels in Okpo (Geoje-si, Gyeongsangnam-do). The Joseon naval force made its first victory against Japan in this battle during the Imjin War.

Battle of Sacheon

From May 29 to June 1, 1592 (lunar calendar date), the Joseon fleet led by Admiral Yi Sun-sin destroyed a total of 13 Japanese vessels in Sacheon (Sacheon-si, Gyeongsangnam-do). This battle was when Admiral Yi’s “geobukseon” (turtle ship) was first used.

Battle of Dangpo

On June 2, 1592 (lunar calendar date), the Joseon fleet led by Admiral Yi Sun-sin destroyed a total of 21 Japanese vessels in Dangpo (Tongyeong-si, Gyeongsangnam-do). The Japanese flagship was destroyed with Admiral Yi’s tactic using the “geobukseon” (turtle ship).

1st Battle of Danghangpo

On June 5, 1592 (lunar calendar date), the combined fleet of Joseon destroyed a total of 28 Japanese vessels in Danghangpo (Goseong-gun, Gyeongsangnam-do). Admiral Yi Sun-sin was joined by the regional commander of the Jeolla Right Naval Headquarters, greatly increasing the total number of warships.

Battle of Hansando

On July 8, 1592 (lunar calendar date), the combined fleet of Joseon launched an operation and destroyed a total of 59 Japanese vessels in Hansando (Tongyeong-si, Gyeongsangnam-do). This battle is one of the three main battles of the Imjin War along with the Battle of Haengju and the Siege of Jinju.

Battle of Angolpo

On July 10, 1592 (lunar calendar date), the combined fleet of Joseon destroyed over 20 Japanese vessels in Angolpo (Changwon-si, Gyeongsangnam-do). Admiral Yi Sun-sin made use of the geographical feature of Angolpo that had a narrow inlet and had his vessels attack alternately, leading to victory.

Battle of Busanpo

On September 1, 1592 (lunar calendar date), the combined fleet of Joseon destroyed over 100 Japanese vessels in Busanpo (Busan Bay, Busan). This battle attacked Busan Bay, the base of the Japanese forces during the Imjin War, resulting in a decisive victory of Joseon.

Battle of Ungpo

From February 10 to March 6, 1593 (lunar calendar date), the combined fleet of Joseon combated 7 battles in Ungpo (Changwon-si, Gyeongsangnam-do). This battle taught a lesson that it is necessary to join with the armed forces to annihilate the Japanese navy when the latter avoids battle.

2nd Battle of Danghangpo

On March 4–5, 1592 (lunar calendar date), the combined fleet of Joseon led by Admiral Yi Sun-sin as Naval Commander of the Three Provinces destroyed 31 Japanese vessels in Danghangpo (Goseong-gun, Gyeongsangnam-do). This battle brought victory with the impeccable tactics of Yi.

Battle of Myeongnyang

On September 16, 1597 (lunar calendar date), Admiral Yi Sun-sin who was reappointed as Naval Commander of the Three Provinces fought against 133 Japanese vessels and destroyed 31 of them with 13 ships in Myeongnyang (a strait between Haenam-gun and Jindo in Jeollanam-do).

Battle of Jeorido

On July 19, 1598 (lunar calendar date), the Joseon fleet led by Admiral Yi Sun-sin destroyed 6 Japanese vessels near Jeorido (Goheung-gun, Jeollanam-do). The victory of this battle showed the world that the Joseon navy had revived.

Battle of Noryang

On November 19, 1598 (lunar calendar date), the combined fleets of Admirals Yi Sun-sin and Chen Lin of the Ming Dynasty destroyed 200 Japanese vessels in Noryang (a strait between Hadong-gun and Namhaedo in Gyeongsangnam-do). This was the final battle of the Imjin War, during which Admiral Yi breathed his last.

“Do not make a hasty movement. Be like a mountain. Move silently and cautiously.”

– Imjin Jangcho (Drafts of Imjin War Reports of Admiral Yi Sun-sin)

Admiral Yi Sun-sin encouraging his generals and soldiers before the Battle of Okpo on May 7, 1592 to be calm and cautious in their first battle.

“The sea dragon is moved as I swear to the ocean, and nature understands my will as I swear to the mountains!”

– Yi Chungmugong Jeonseo (Complete Works of Yi, Lord of Loyalty and Chivalry)

Admiral Yi Sun-sin swearing to sacrifice his life for the country after finding out that the king had fled in 1592.

“Your Majesty, there are still twelve battleships in my possession. We can win if we fight with all we can.”

– Yi Chungmugong Jeonseo (Complete Works of Yi, Lord of Loyalty and Chivalry)

Admiral Yi Sun-sin appealing the need for the naval forces when the king commanded to abolish the navy after Yi’s reappointment as Naval Commander of the Three Provinces in 1597.

“Those who seek death shall live. Those who seek life shall die.”

– Nanjung Ilgi (War Diary of Admiral Yi Sun-sin)

Admiral Yi Sun-sin stressing for victory to his generals while conveying military tactics before the Battle of Myeongnyang in 1597.

“A single man can guard a path to frighten a thousand men.”

– Nanjung Ilgi (War Diary of Admiral Yi Sun-sin)

Admiral Yi Sun-sin boosting his generals’ motivation before the Battle of Myeongnyang in 1597.

“We are at the height of battle. Do not let anybody know about my death. Our seamen shall not be frightened.”

– Yi Chungmugong Jeonseo (Complete Works of Yi, Lord of Loyalty and Chivalry)

Admiral Yi Sun-sin retaining his generals’ military morale even when faced with death after being shot by the enemy during the Battle of Noryang in November 1598.

“A man shall sacrifice his life if he is used for the country. If not, he shall satisfy being a farmer in the field.”

– Yi Chungmugong Jeonseo (Complete Works of Yi, Lord of Loyalty and Chivalry)

Admiral Yi Sun-sin expressing his patriotic devotion with the mindset of an admiral.

“I will not let a single Japanese vessel return home for the revenge of my country.”

– Yi Chungmugong Jeonseo (Complete Works of Yi, Lord of Loyalty and Chivalry)

Admiral Yi Sun-sin showing his will to defeat the Japanese invaders to the military commander of the Ming Dynasty.

“I shall die if I should die. There is no way I will try to avoid it miserably.”

– Yi Chungmugong Jeonseo (Complete Works of Yi, Lord of Loyalty and Chivalry)

Admiral Yi Sun-sin reprimanding his subordinate who told him to “avoid death through bribery.”

“I will do all I can, alive or dead, to protect the country.”

– Nanjung Ilgi (War Diary of Admiral Yi Sun-sin)

Admiral Yi Sun-sin lamenting the precarious situation of the king seeking refuge from the Japanese invasion.

“There is no point in regretting if you lose this opportunity.”

– Nanjung Ilgi (War Diary of Admiral Yi Sun-sin)

Admiral Yi Sun-sin claiming that now was the opportunity to attack the enemy after finding out that the meeting of the Ming and Japanese envoys in 1593 was a tactic of the Japanese.

“Know yourself and your enemy, then you can win every battle.”

– Nanjung Ilgi (War Diary of Admiral Yi Sun-sin)

Admiral Yi Sun-sin showing the basic mindset for engaging in battle with the enemy.

“I found out about my mother’s passing. I fell in despair and even the sun in the sky seemed dark.”

– Nanjung Ilgi (War Diary of Admiral Yi Sun-sin)

Admiral Yi Sun-sin expressing his grief after finding out about his mother’s death while he was demoted to the rank of a common soldier on January 13, 1597.

“I have no wish if I can defeat these enemies.”

– Yi Chungmugong Jeonseo (Complete Works of Yi, Lord of Loyalty and Chivalry)

Admiral Yi Sun-sin uttering his wish to the sky on board before the Battle of Noryang in November 1598.

“Attack for a small gain and you cannot gain anything greater.”

– Nanjung Ilgi (War Diary of Admiral Yi Sun-sin)

Admiral Yi Sun-sin commanding his men upon receiving information that a small number of enemies’ vessels have appeared on February 13, 1594.

“We can annihilate the enemy if our naval and armed forces advance together.”

– Yi Chungmugong Jeonseo (Complete Works of Yi, Lord of Loyalty and Chivalry)

Admiral Yi Sun-sin discussing tactics for the Battle of Busanpo in 1592.

“I cannot meet him while appointing new officials as we are both from the same clan.”

– Yi Chungmugong Jeonseo (Complete Works of Yi, Lord of Loyalty and Chivalry)

Admiral Yi Sun-sin refusing the offer to meet Yi I who was his relative and a personnel officer at the time.

“There is no other purpose but death for a servant to serve his king.”

– Yi Chungmugong Jeonseo (Complete Works of Yi, Lord of Loyalty and Chivalry)

Admiral Yi Sun-sin showing his mindset as a loyal servant during a national crisis.

“I shed tears as I thought about the country and spent sleepless nights as I thought about my 80-year-old ill mother.”

– Nanjung Ilgi (War Diary of Admiral Yi Sun-sin)

Admiral Yi Sun-sin thinking about his country and mother on January 1, 1595.

“The country is as vulnerable as the morning dew.”

– Nanjung Ilgi (War Diary of Admiral Yi Sun-sin)

Admiral Yi Sun-sin worrying about the country’s future by himself on July 1, 1595.

“The enemies cannot attack us even if they have a thousand vessels, so don’t mind and keep shooting.”

– Nanjung Ilgi (War Diary of Admiral Yi Sun-sin)

Admiral Yi Sun-sin commanding his men during the Battle of Myeongnyang in 1597.

“The mountains and the waters tremble as I swear to the heavens with a three-chi (90 cm) sword, and with one swing of the sword, blood dyes the rivers and mountains.”

– Yi Chungmugong Jeonseo (Complete Works of Yi, Lord of Loyalty and Chivalry)

Phrase engraved on the sword of Admiral Yi Sun-sin.

“I am in grief. My son! Where have you gone after leaving me?”

– Nanjung Ilgi (War Diary of Admiral Yi Sun-sin)

Sorrowful cry of Admiral Yi Sun-sin upon hearing news of the passing of his son on October 14, 1597.

十二胜战碑

玉浦海战

1592年5月7日(阴历),李舜臣指挥的朝鲜舰队在玉浦(庆尚南道巨济市)击溃了26艘日本战船。壬辰倭乱期间,朝鲜水军在此次海战中首次战胜日本

泗川海战

1592年5月29日~6月1日(阴历),李舜臣指挥的朝鲜舰队在泗川(庆尚南道泗川市)击溃了13艘日本战船。此次海战首次将龟船投入实战。

唐浦海战

1592年6月2日(阴历),李舜臣指挥的朝鲜舰队在唐浦(庆尚南道统营市)击溃了21艘日本战船。朝鲜采用龟船战术击溃了日本统帅乘坐的战船。

第一次唐项浦海战

1592年6月5日(阴历),朝鲜联合舰队在唐项浦(庆尚南道固城郡)击溃了28艘日本战船。全罗右水营的水军参与了此次海战,大大增强了联合舰队的战斗力。

闲山岛海战

1592年7月8日(阴历),朝鲜联合舰队在闲山岛(庆尚南道统营市)使用诱敌入套之计,击溃了59艘日本战船。此次海战与幸州大捷、晋州城大捷并称为壬辰倭乱三大捷。

安骨浦海战

1592年7月10日(阴历),朝鲜联合舰队在安骨浦(庆尚南道昌原市)击溃了20多艘日本大船。朝鲜利用安骨浦浦口窄的地形特点,采用板屋船轮番进攻的方式获得了胜利。

釜山浦海战

1592年9月1日(阴历),朝鲜联合舰队在釜山浦(釜山广域市)击溃了100多艘日本战船。壬辰倭乱期间,釜山浦是日军根据地,此次海战直接进攻釜山浦并大获全胜。

熊浦海战

1593年2月10日~3月6日(阴历),朝鲜联合舰队在熊浦(庆尚南道昌原市)展开了七次战斗。日本水军采取了避而不战的策略,朝鲜因此总结出“想要歼灭日军,必须联合陆军两面夹击”的教训。

第二次唐项浦海战

1594年3月4~5日(阴历),三道水军统制使李舜臣率领的朝鲜联合舰队在唐项浦(庆尚南道固城郡)击溃了31艘日本战船。此次海战凭借李舜臣的周密战略获得了胜利。

鸣梁海战

1597年9月16日(阴历),李舜臣再次担任三道水军统制使之后, 在鸣梁(全罗南道海南郡和珍岛之间的海峡)率13艘板屋船迎战133艘日本战船,击溃了31艘。

折尔岛海战

1598年7月19日(阴历),李舜臣的朝鲜舰队在折尔岛(全罗南道高兴郡)附近击溃了6艘日本战船。这次海战的胜利向世人展示了朝鲜水军已经成功重建。

露梁海战

1598年11月19日(阴历),李舜臣和明朝陈璘的联合舰队在露梁(庆尚南道河东郡和南海岛之间的海峡)击溃了200艘日本战船。这是壬辰倭乱期间最后一次海战,李舜臣在此次战斗中阵亡。

勿令妄动,静重如山。

1592年5月7日玉浦海战之时,缓解率先出战的将士们的紧张感,使其保持从容冷静。(壬辰状草)

誓海渔龙动,盟山草木知!

1592年,听闻君王逃难的消息后,决心为国捐躯。(李忠武公全书)

今臣战船,尚有十二。出死力拒战则犹可为也。

1597年,再次被任命为三道水军统制使后,在君王下令废除水军之时言明保留水军的必要性。(李忠武公全书)

必生即死,必死即生。

1597年,鸣梁海战前夕引用兵法向将帅强调必胜。(乱中日记)

一夫当径,足惧千夫。

1597年,鸣梁海战前夕鼓舞将帅的士气。(乱中日记)

战方急,慎勿言我死。切勿惊扰将士。

1598年11月露梁海战之时,被敌人的枪弹击中,阵亡前担忧士兵的士气。(李忠武公全书)

丈夫生,世用则死,不用则耕于野足矣。

展现了将军平时的心态和忧国忧民之情。(李忠武公全书)

残凶余孽,集橹不返,拟雪国家之仇怨。

李舜臣将军向明朝仙游道士表明了势必击退倭寇的决心。(李忠武公全书)

死则死耳,何可苟免!

听部下说“献赃免死”后训斥他。(李忠武公全书)

为保国家社稷,鞠躬尽瘁。

哀叹君王因外敌侵略而逃难的危急现实。(乱中日记)

噬脐莫及。

1593年,意识到明朝和日本会谈是日本挽回不利战局的一种战术,因此主张这是进攻敌人的机会。(乱中日记)

知己知彼,百战不殆。

展现了与敌人作战的基本态度。(乱中日记)

传来母亲死讯。奔跑而出,恸而捶胸,天上太阳,黯淡无光。

1597年1月13日白衣从军之时,听闻母亲死讯,流露出悲痛的心情。(乱中日记)

此仇若除,死而无憾。

1598年11月出征露梁海战前夕,在船上向上天祈愿。(李忠武公全书)

为贪小利而攻之,则必失大利也。

1594年2月13日,听到敌船小规模出现的谍报后下达命令。(乱中日记)

水陆之师携手进攻,必可全歼敌人。

1592年,讨论应对釜山浦海战的战略。(李忠武公全书)

位居选官之位,不见同族之人。

亲戚李珥(号栗谷)担任人事掌权者时,拒绝去见他。(李忠武公全书)

臣事君,有死无二。

表明了国家处于危难之时,作为臣子的心态。(李忠武公全书)

心系国事,泪流满面,念及疾病缠身的八十老母,夜不能寐。

1595年1月1日,新年之际挂念国家和父母。(乱中日记)

国家局势危如朝露。

1595年7月1日,独自忧心国家的未来。(乱中日记)

贼虽千集,莫敌我船,切勿有丝毫动摇,全力射箭。

1597年,在鸣梁海战中鼓励将士们。(乱中日记)

三尺誓天,山河动色,一挥扫荡,血染山河。

李舜臣将军剑上所刻之字。(李忠武公全书)

哀哉。我儿!弃我去往何处?

1597年10月14日,李舜臣将军得知儿子的死讯。(乱中日记)

12勝戦碑

オクポ(玉浦)海戦

1592年5月7日(旧暦)、イ・スンシン(李舜臣)が主導して指揮した朝鮮艦隊が、オクポ(玉浦、キョンサンナムド(慶尚南道)コジェ(巨済)市)で日本の軍船26隻を撃破した。壬辰倭乱(文禄・慶長の役)で水軍はこの海戦で初めて日本に勝利した。

サチョン(泗川)海戦

1592年5月29日~6月1日(旧暦)、イ・スンシン(李舜臣)が主導して指揮した朝鮮艦隊が、サチョン(泗川、キョンサンナムド(慶尚南道)サチョン(泗川)市)で日本の軍船13隻を撃破した。この海戦で亀甲船が初めて実戦に投入された。

タンポ(唐浦)海戦

1592年6月2日(旧暦)、イ・スンシン(李舜臣)が主導して指揮した朝鮮艦隊が、タンポ(唐浦、キョンサンナムド(慶尚南道)トンヨン(統営)市)で日本の軍船21隻を撃破した。亀甲船を利用した戦術で日本の隊長船を撃破した。

第一次タンハンポ(唐項浦)海戦

1592年6月5日(旧暦)、朝鮮の連合艦隊がタンハンポ(唐項浦、キョンサンナムド(慶尚南道)コソン(固城)郡)で日本の軍船28隻を撃破した。チョンラウスヨン(全羅右水営)の水軍がこの海戦に参戦することで連合艦隊の戦力は大きく強化された。

ハンサンド(閑山島)海戦

1592年7月8日(旧暦)、朝鮮の連合艦隊がハンサンド(閑山島、キョンサンナムド(慶尚南道)トンヨン(統営)市)で誘引作戦を繰り広げて日本の軍船59隻を撃破した。この海戦は、ヘンジュ(幸州)大捷、チンジュソン(晋州城)大捷とともに壬辰倭乱(文禄・慶長の役)の3大捷の一つである。

アンゴルポ(安骨浦)海戦

1592年7月10日(旧暦)、朝鮮の連合艦隊がアンゴルポ(安骨浦、キョンサンナムド(慶尚南道)チャンウォン(昌原)市)で日本の大船20隻余りを撃破した。入り江が狭いアンゴルポ(安骨浦)の地形を利用して、板屋船が代わる代わる攻撃する方式で勝利を収めた。

プサンポ(釜山浦)海戦

1592年9月1日(旧暦)、朝鮮の連合艦隊がプサンポ(釜山浦、釜山広域市)で日本の軍船100隻余りを撃破した。壬辰倭乱(文禄・慶長の役)で日本軍の本拠地だったプサンポ(釜山浦)を直接攻撃して大勝利を収めた海戦だった。

ウンポ(熊浦)海戦

1593年2月10日~3月6日(旧暦)、朝鮮の連合艦隊がウンポ(熊浦、キョンサンナムド(慶尚南道)チャンウォン(昌原)市)で7度にわたって戦闘を繰り広げた。日本水軍が戦闘を回避するに従い、彼等をせん滅するためには陸軍と挟撃するべきだという教訓を残した。

第二次タンハンポ(唐項浦)海戦

1594年3月4日~5日(旧暦)、三道水軍統制使のイ・スンシン(李舜臣)率いる朝鮮の連合艦隊が、タンハンポ(唐項浦、キョンサンナムド(慶尚南道)コソン(固城)郡)で31隻の日本軍船を撃破した。イ・スンシン(李舜臣)の用意周到な戦略によって勝利を収めた海戦だった。

ミョンニャン(鳴梁)海戦

再び三道水軍統制使になったイ・スンシン(李舜臣)が、1597年9月16日(旧暦)にミョンニャン(鳴梁、チョンラナムド(全羅南道)ヘナム(海南)郡とチンド(珍島)の間の海峡)で、13隻の板屋船で日本の軍船133隻に立ち向かって31隻を撃破した。

チョリド(折爾島)海戦

1598年7月19日(旧暦)、イ・スンシン(李舜臣)の朝鮮艦隊がチョリド(折爾島、チョンラナムド(全羅南道)コフン(高興)郡)近くで日本の軍船6隻を撃破した。この海戦の勝利は、朝鮮水軍が再建に成功したことを天下に知らしめた。

ノリャン(露梁)海戦

1598年11月19日(旧暦)、イ・スンシン(李舜臣)と明のチンリン(陳璘)の連合艦隊が、ノリャン(露梁、キョンサンナムド(慶尚南道)ハドン(河東)郡とナムヘド(南海島)の間の海峡)で日本の軍船200隻を撃破した。壬辰倭乱(文禄・慶長の役)最後の海戦で、この戦闘でイ・スンシン(李舜臣)は戦死した。

むやみに軽々しく動かず、泰山のごとく静かに慎重になれ。

1592年5月7日、オクポ(玉浦)海戦に初出陣する兵士の緊張を解いて余裕と冷徹さを持つよう言い聞かせた言葉。(壬辰状草)

海に誓うと魚龍も感動して、泰山に誓うと山川草木も分かるのだな!

1592年、王が避難したことを聞いて国のために命を捧げることを誓った言葉。(李忠武公全書)

臣にはまだ12隻の船があります。死ぬ気で防いで戦えば必ず勝てます。

1597年に三道水軍統制使に再任用された後、水軍を廃止せよという王の指示に対して水軍の必要性を訴えた言葉。(李忠武公全書)

死のうとすれば必ず生き、生きようとすれば必ず死ぬだろう。

1597年ミョンニャン(鳴梁)海戦を目前に控え、兵法を引用して将帥たちに必勝を力説した。(乱中日記)

一人が道を守れば、千人をも恐れさせることができる。

1597年ミョンニャン(鳴梁)海戦を目前に控え、将帥たちの士気を高めるための言葉。(乱中日記)

戦いは火急を要している。私の死を知らせるな。兵士たちを恐れさせてはならない。

1598年11月、ノリャン(露梁)海戦で敵の銃弾に当たり死を目前にして兵士たちの士気を案じて言った言葉。(李忠武公全書)

男が世に生まれて誰かに使われるなら国に命を捧げ、使われないなら野で農夫になることで満足するだろう。

常日頃から将軍の心構えと憂国の至情を見せた言葉。(李忠武公全書)

残っている倭賊の船は一隻も逃がすことなく国の敵を仇を討つ。

イ・スンシン(李舜臣)将軍が明の宣諭都司に日本軍を必ず退ける覚悟を明かした言葉。(李忠武公全書)

死ぬなら死ぬのだ、見苦しく死を免れようとするものか!

『賄賂を渡して死を免れるべきだ』という部下の言葉を聞いてその者をとがめた言葉。(李忠武公全書)

国と社稷を守るためなら、生死問わず、全力を尽くせ。

王が日本軍の侵略によって避難する切迫した現状を嘆いた言葉。(乱中日記)

いま機会を逃せば後悔しても遅いだろう。

1593年明と日本の会談が不利な戦況を挽回するための日本の戦術であることを知って、敵を攻撃する機会であると主張した言葉。(乱中日記)

敵を知り己を知れば百戦殆うからず。

敵との戦いに臨む基本的な心構えを見せた言葉。(乱中日記)

母の訃報を知らされた。走って胸を打ちながら悲しんでいると、空の太陽すら真っ暗に見えた。

1597年1月13日、白衣従軍したときに母の訃報を聞いて悲痛な心境を露にした言葉。(乱中日記)

この敵を打ち破ることができるなら、死んでも思い残すことはありません。

1598年11月、ノリャン(露梁)海戦に出陣する前に船で天に祈願した言葉。(李忠武公全書)

小さな利益を得るために攻撃しては大きな利益は得られないだろう。

1594年2月13日、現れた敵の船が小規模であるという諜報を聞いて命令した際の言葉。(乱中日記)

水軍と陸軍がともに進撃すれば、敵を殲滅できるだろう。

1592年プサンポ(釜山浦)海戦に臨む戦略を論議する場にて。(李忠武公全書)

官職を選ぶ地位にある間は、同じ一族の者なので会えない。

親戚のユルゴク(栗谷)イ・イ(李珥)が人事権者だった時期に彼に会ってみろという話を拒否した。(李忠武公全書)

臣下が王に仕えるなら、死があるのみで二心はない。

国が危機に瀕した状況で臣下としての心構えを示した言葉。(李忠武公全書)

国事を思っては涙を流し、80歳の病んだ母を想っては開いた目で夜を明かした。

1595年1月1日新年、国と両親のことを思って語った言葉。(乱中日記)

国の情勢が朝露のように危い。

1595年7月1日、一人国の行く末を案じた言葉。(乱中日記)

敵の船が千隻でも私たちの船にはまともにかかって来れないので、少しも動揺することなく全力を尽くして矢を射ろ。

1597年ニャン(鳴梁)海戦で兵士たちを激励した言葉。(乱中日記)

三尺の刀で天に誓うと江山は震え、一度振れば血が江山を染める。

イ・スンシン(李舜臣)将軍の剣に刻まれた文句。(李忠武公全書)

悲しい。私の息子よ!私を捨ててどこへ行ってしまったのか?

1597年10月14日、イ・スンシン(李舜臣)将軍が息子の訃報を聞いた際の言葉。(乱中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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